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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 교수]"우리시대의 자화상에 냉철한 비판을 가해야"
- [인물산책] 동방대학원대학교 한중수 교수
- 그동안 펴낸 저서 80권...탈고 끝내지 않은 4권의 자서전
- 이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어른...존경해야할 학자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진화론자의 학설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류는 유사 이후 오랜 시간을 거쳐 오면서 생태적 변화는 물론 그에 부합하는 이른바 ‘문명’이라는 거대한 산물을 창조해 냈음을 알 수 있다.

어디 또한 그뿐이랴. 인간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집단적 정서 혹은 반복의 사유 속에 문명은 곧 ‘문화’라는 유무형의 유산을 낳으면서 공유해 왔고 지금도 그 문명의 발전은 혀를 내두를 만큼의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편익에 지대한 공헌을 가져다주고 삶의 질적 향상에도 기여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조화를 발견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이른바 문명의 태동과 발전은 인간의 행복과 풍요로운 삶을 보장키 위한 가치로써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려한 이기적 수단 내면 한켠에는 치유할 수 없는 인간의 심약성과 도덕적 불감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의 화두가 말해 주듯이 문명의 발전이 반드시 인류사회의 질적 향상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등식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씁쓸한 여운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사회적 병리 혹은 참담하게 붕괴되는 윤리적 가치를 접하게 된다. 그것들을 직면할 적에 또한 우리는 세상을 탓하며 ‘도리 없는 작금의 상황’이려니 하고 체념하고 만다. 언필칭 부도덕성 내지는 비윤리적 인간성 파괴의 형국인 것이다.

낱낱이 열거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러한 일련의 세태의 흐름은 자칫 우리시대의 진정한 자화상인 정체성마저 상실하게 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만다행인 것은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 재무장의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정의 구현에 앞장서는 이들이 있어 우리사회는 그나마 반듯함을 잃지 않고 꿋꿋한 자세로 버티어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한중수씨가 있다. 그는 본지가 기획한 ‘인물산책’의 주제 인물이기도 하다.

기자는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의 그의 집필실을 직접 방문, 혼탁한 사회적 병리의 원인과 또한 치유적 사고(思考)의 변(辯)을 들었다.

동방대학원대학교(문화교육원) 교수이자 한학자인 그는 지금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강단에 서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집필에도 정열을 쏟고 있다.

그의 별칭은 한 둘이 아니다. 저술가, 번역가, 역학전문가는 물론 동양고전전문가라고 까지 호칭되고 있는 걸로 보면 그의 학문에 대한 섭렵의 폭은 차라리 광대무변이라 할 수 있다.

한중수 교수는 충남 서천이 고향이다. 그리고 ‘조부모와 선친 모두가 한학자였던 터라 유년시절부터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학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그 영향을 받지 않았나’하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그러나 40여 년을 외고집으로 학문 탐구에만 몰두했다는 그의 의지는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펴 낸 저서만 해도 80권이 넘으며 앞으로도 채 탈고를 끝내지 않은 4권과 자서전까지를 계획하고 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젊었을 때입니다. 몸담았던 출판사 사장의 권유로 마지못해 ‘관혼상제’에 대해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처녀작인 셈입니다.”라고 말하며 그는 연신 머쓱함을 감추지 못했다. 방대한 저서를 저술함에 있어서의 특별한 계기를 묻는 기자에 답하는 그의 인간적 독백이었다. 본인의 인생 여정이 그렇게 남들로부터 박수 받을 만함이 되겠냐는 일종의 겸손이었다. 그러나 그의 나직한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절제된 힘과 여유로운 기품 속에는 어떤 견고한 내공마저 한껏 배어 있었다.

“비록 단 한 권의 저서를 남긴다 하더라도 학자의 양심에는 침소봉대하는 그런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냉철한 이성을 견지하며 항상 객관적 진리의 잣대를 훼손하지 않고 자신의 이론에 비판적 시각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하면서 “저 역시도 스스로의 평론자적 입장에서 괴로움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았더랬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한중수 씨는 그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지극히 개인적 삶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도 애써 설파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 자신도 현실이라는 냉혹한 장벽을 뛰어 넘으려는 몸부림도 없지 않았습니다. 주위의 감언이설에 혹은 포장된 박수에 나의 소박한 정체를 유린한 채 연극적인 삶을 엮어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경제적 풍요로움이나 명예에 급급한, 다시말해 일신의 영달에 치우칠 수도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내 자신을 속이거나 기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인배적 치기를 배제하고 거부했다고 할 수 있겠죠.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타고난 심성대로, 특히 인간의 기본적 철학이 무엇이냐라는 대명제에 고민을 하며 순리와 정도의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라고 역설했다.

취약한 환경의 갖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곧은 절개를 지켰다는 표현이었다. 그는 또한 현 세태의 그릇된 방향을 꼬집기도 했다.

“생명의 존엄을 상실하는, 지금 우리사회가 지극히 위태한 지경에까지 왔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뭐 다 그렇고 그렇다는 자조의 탄식도 있겠습니다만, 최근의 생명 경시 풍조는 그 위험 수위에 다달았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의 이기적 행각에, 아니면 물질 만능주위의 사각에서, 혹은 나의 주장이 상대에게 관철되지 않는다고 소중한 목숨까지를 담보하며 오직 극단적인 쟁취에만 혈안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라리 웅변이었다. 나지막한 음성에는 잘 정돈된 그만의 인간적 고뇌와 사회적 모순에 대한 진한 성토와 교훈이 한껏 묻어나왔다. 세상을 향한 곧은 질타였다. 상대를 배려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인간의 숭고한 노동의 결실에 만족해 할 줄 아는 자라야만이 분명 삶의 진정한 가치에 부합될 수 있다는 외침이었다.

“정말이지 이제는 우리 모두의 각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야만적 투쟁은 결국 서로의 패망을 재촉하는 길입니다.”라고 그는 또 한번 강조하면서 “동물과 달리 우리 인간에게는 이성이라는 덕성을 갖고 있습니다. 눈에 씌운 깍지를 벗겨내고 이성의 눈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며 편견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유리알처럼 자신의 모습을 투명하게 비춰 보고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또한 정제와 관용, 사랑과 지혜라는 덕목을 길러야 할 때입니다.”라면서 힘주어 말했다.

군중 속의 고독이 그러하듯이 한중수 씨의 긴 인생 여정 또한 그러지 아니했을까.

오직 붓으로만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외길 행로. 그동안의 자신의 물리적 삶에 대한 만족도엔 박한 결론을 서슴치 않으면서도 정작 정신적 인간 고뇌에는 후한 점수를 마다하지 않는 그이고 보면 정녕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어른이요 우리 모두가 존경해야 할 학자임에 분명했다.

‘우리들의 번민은 모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지 않는 데 있다’라는 ‘데일 카아네기’의 말이 머릴 스친다. 비단 기자만의 생각일까. 한중수 교수의 가르침이 번민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그래서 우리 모두의 소박하고 진솔한 희망의 세상을 펼쳐나갔으면 하는 기댈 가져본다.

/이용근 기자 press33@dbs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