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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7일은 국가가 제82회 순국선열의 날이었다.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여주시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기념행사를 갖고 순국선열께 감사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의지를 다졌다. 박시선 여주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순국선열의 고귀한 정신을 받드는 행사에 함께 해 주신 내빈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같은 시각 명성황후 탄생 170주년 숭모제가 열렸다. 순국선열의 날, 명성황후 민씨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가 순국선열의 날과는 상관없이 별도로 열린 것이다.

여주시와 세종문화재단이 명성황후생가 주관하여 문예관에서 개최한 이 행사는 작헌례와 헌화, 분향, 뮤지컬공연 등으로 구성되어 순국선열을 기리는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5,700만원의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었고, 시와 재단이 주관한 행사이다 보니 시장은 물론 도의원과 대부분의 시의원도 참석하였다.

명성황후생가는 세종대왕릉, 신륵사와 함께 여주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이고, 명성황후는 대원군, 고종과 더불어 조선말기 역사의 핵심적 인물 중 하나이니 기념행사를 거행하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명성황후 탄생을 축하하는 탄신숭모행사를 지낼 것인가, 아니면 일본의 만행에 의해 희생된 명성황후의 추모제를 지낼 것인가는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이 천지차이라는 점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명성황후는 여주시 능현리 생가에서 출생하여 8살까지 살다가 상경한 후, 16세에 고종의 왕비가 된 인물로, 출중한 지성과 예리한 식견을 가진 여걸로 평가되기도 한다.

일본은 외교 정세에 밝은 명성황후가 자신들의 조선침탈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고, 1895년 10월 8일 (음력 8월 20일) ‘여우사냥’으로 불린 제거작전을 실행하여 명성황후를 경복궁 건청궁의 옥호루에서 시해하였다. 일명 을미사변이다.

이 명성황후시해사건을 지휘한 것이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였으니, 이는 결국 일본정부의 만행이었던 것이다. 조선왕비 살해는 국내외적으로도 큰 충격이었고, 을미의병이 일어날 정도로 조선이 분노하였으며, 고종은 아관파천을 단행해 조선의 국격이 떨어지고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비극적 사건이었다.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망국을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비판에서, 항일정신으로 무장한 구국의 여걸이라는 찬양까지 다양하고,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19세기말 조선의 시대적 혼란 속에서 명성황후가 보여준 면면들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일 것이다.

명성황후는 개국과 개혁에는 긍정적이었으나, 유리한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였고, 친정세력을 비호하여 시대적 역행을 초래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아직은 뚜렷한 평가가 내려지기 쉽지 않아 추가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분석과 평가를 토대로 판단한다면, 명성황후의 탄생보다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훨씬 역사적 의미가 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건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되새기며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하고,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우리의 안보태세와 국력신장의 의지를 다져야 한다.

그런데 여주시와 세종문화재단은 명성황후의 탄신을 기념하는 숭모제를 지낸다. 그것도 순국선열의 날 말이다. 더구나 5,700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해서 한 사람의 사적인 탄신을 대대적 행사로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돼도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어느 가정이든 돌아가신 조상의 생일을 기념하지는 않는다. 별세한 날을 추모일로 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은 탄생일을 기념한다.

여주시와 세종문화재단이 이것을 따라서 한 것이라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이에 공감할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철저한 고민과 자성이 필요해 보인다.

여주시민의 대표라고 하는 분들의 행보도 생각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역사를 모르고 그 의미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면, 리더로서의 자격은 미달이다.

법정기념일인 순국선열의 날 행사가 열리는 시간에,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는 탄신행사에 버젓이 참여하는 것은 개념없는 처사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행사는 단지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행사는 관점과 태도의 산물이기에 잘못된 행사는 잘못된 역사적 관점과 태도를 재생산한다. 이는 결국 우리의 내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라도 명성황후 탄신 숭모제의 오류와 허점을 제대로 밝히고, 올바른 역사인식에 입각해, 의미있는 행사를 제대로 치러야 할 것이다.

/여주시 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